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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건축가로 활동하기 전, 뉴욕에 있는 설계 사무실에서 몇 년간 일하면서 실무 경력을 쌓았습니다. 맨하튼에 살았다고 하면 화려한 삶을 상상하겠지만, 제가 살던 렉싱턴 에비뉴는 동네의 정취가 느껴지는 곳이었습니다. 조용한 주택가 골목에 위치한 능동 하늘집을 설계할 때 떠올렸던 맨하튼의 추억을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조성익  Sungik Cho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교수 |  TRU 건축사 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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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의 퇴근길

설계 사무소에서 집까지는 한 시간 가까이 걸어야 하는 거리였지만, 날씨가 좋은 금요일 퇴근길은 일부러 걸어서 집까지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길을 걷다보면 손에 비닐 봉투가 하나씩 늘어납니다. 길가의 작은 가게를 만날 때마다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하나 둘 사들고 가게 되는 거죠. 그리스 아저씨가 하는 요거트 가게에서 봉투 하나, 쫄깃하고 맛있는 베이글 가게에서 하나, 햇과일이 들어온 과일 가게에서 납작 봉숭아 3개, 이러다 보니 집앞에 도착했을 때는 손에 저녁 거리들이 조롱조롱 매달려 있습니다.

 

저만 그런게 아닙니다. 퇴근 길에 작은 봉지들을 달고 씩씩하게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면, 관광객이 아니라 뉴요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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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복합 도시, 뉴욕

왜 맨하튼에서는 다리 아픈 줄 모르고 먼 거리를 걸어다니게 될까요? 이유는 길에 면한 건물 1층에 대부분 가게가 들어서 있고, 그 위에 주택이 얹혀있기 때문입니다. 집으로 가다보면 일본 수퍼마켓, 터키 디저트 가게, 독일의 빵집을 자연스럽게 만납니다. 도시 전체의 도로변에 골고루 퍼져있어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라고 생각하고 길을 걷다보면 어느새 집에 도착해있습니다. 한 마디로 맨하튼은 도시 전체가 주거와 상업 시설이 복합으로 지어진, '주상복합 도시'인 셈입니다.

이것은 지하철 역 근처에 주로 가게가 몰려 있고 주택지 골목으로 들어가면 굳게 닫힌 대문과 주차장 기둥만 보이는 우리나라의 거리와는 다른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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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은 작은 단위로

사실 주상복합이란 말을 들으면 우리는 거대한 고급 주거 건물들을 먼저 떠올립니다. 2000년대에는 타워팰리스를 시작으로 초고층 주상복합의 시대가 시작되었죠. 그 이후 지금까지 대규모 복합단지가 지어지고 있지만 거리의 활기를 살리지는 못했습니다. 맨하튼 거리의 비밀은 작은 건물들이 가게, 사무실, 주택을 골고루 품고 있는 '소규모' 주상복합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소규모 주상복합 건물 하나하나가 모여 주상복합 골목, 주상복합 도시를 만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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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에 활기를 주는 '소규모 복합주택'

능동은 반듯하게 나눈 필지에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들이 들어선 조용한 주택가였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단독주택을 허물고 임대용 주거건물을 신축하는 공사가 곳곳에 벌어지면서 골목의 평화롭던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우리는 1층에 주차장 기둥들이 늘어서기 시작해 삭막해진 동네의 골목길에 활기를 불어넣는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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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형 복합건물

"골목과 건물, 주거와 업무시설을 어떻게 만나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가지고 디자인을 시작했습니다. 능동 하늘집은 대가족을 위한 주거 공간, 업무 공간, 골목을 밝히는 상업공간이 위·아래로 결합된 집입니다. 업무공간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단독주택에 사는 가족이 독립적이면서도 서로 시선을 주고 받으며 공존하는 ‘골목형 복합건물’의 유형을 제안하기 위해 스케치와 모형을 검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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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경관에 기여하는 건물

최근 도시의 단독주택지가 점점 줄어들면서, 상업시설이나 수익형 임대 주거 건물이 골목의 경관을 바꾸고 있는 상황입니다. 골목의 경관을 장악한 주차 차량들과 임대면적을 최대로 늘린 건물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동네의 활력과 이미지를 저해하는 요인이 됩니다. 우리는 계획 초기부터 건축주와 긴밀히 협의하여 골목의 풍경에 기여하는 건물을 계획하는 것이 건물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라는 믿음을 공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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